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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녀시대·원더걸스, 누가 귤이고 탱자인가 |
【서울=뉴시스】
다들 인지하다시피, 한국 아이들(idol) 산업의 바탕은 일본의 그것이다. 콘셉트 기획부터 자잘한 홍보 전략까지 다양하고 뿌리 깊게 영향 받는다.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사실 해외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전략을 짜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고 현명한 방식이다.
할리우드식 전략을 벤치마킹한 국내 상업영화 전략을 생각해보면 쉽다. ‘적용’, 즉 벤치마킹의 적합성 차원에서 점검해봐야 할 일이지, 여기에 민족적 자존심을 대버리면 이야기가 안 된다. 상업영화가 으레 그런 장사이듯, 아이들 산업도 으레 그런 장사다.
이 적용의 문제, 벤치마킹의 적합성 문제는 최근에도 일어났다. 소녀 아이들 그룹의 일대 재기를 걸고 등장한 일련의 상품들 중 대칭축을 이룬 둘,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기획이 그것이다. 단적으로 말해, 소녀시대와 원더걸스는 모두 일본 ‘모닝구 무스메’의 콘셉트에서 주요요소를 차용했다.
물론 의문이 일 수 있다. 사실 소녀시대는 론칭 단계에서부터 모닝구 무스메 콘셉트임이 쉽게 드러났다. 대형 소녀 그룹이라는 콘셉트 외에도, 갖가지 전략들, 즉 고토 마키 효과를 의식한 듯한 ‘단 한 명의 금발 멤버’, 가볍고 부드러운 팝 댄스 넘버에 사랑 얘기에서 벗어난 희망적이고 진취적인 가사, 귀여우면서도 정교한 군무 등 다양한 면에서 모닝구 무스메를 닮았다.
그러나 원더걸스와 모닝구 무스메를 연결 짓는 건 꽤나 어색해 보인다. 정확히 말해, 모닝구 무스메와 닮은 구석은 전혀 안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앞서 언급한 ‘적용’의 문제가 발생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닝구 무스메 콘셉트란 모닝구 무스메의 ‘후기 전략’이다. 뜨고 난 후의 전략이라는 이야기다. 원더걸스는 ‘전기 전략’, 즉 모닝구 무스메가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되기까지 시도했던 전략을 담고 있다.
데뷔 과정부터 살펴보자. 소녀시대는 SM 연습생들 중에서 멤버를 추려내 완벽한 ‘기획사 신데렐라’ 이미지로 등장했다. 최근의 모닝구 무스메 추세도 이와 같다. 점차 오디션의 화제성이 떨어지자 비중도 줄였고, 새로 영입한 중국인 멤버 ‘링링’은 소속사 헬로프로젝트 연습생 격인 ‘헬로프로젝트 에그’에서 바로 뽑아낸 경우다. 또 다른 중국인 멤버 ‘준준’은 아예 연습생도 거치지 않고 중국에서 바로 선발해 프로듀서 층쿠로부터 직접 ‘신데렐라’라는 단어를 내뱉게끔 했다.
그러나 애초 모닝구 무스메는 ‘TV 공개 오디션’ 덕택에 화제가 되어 화제성을 얻은 경우다. 텔레비전도쿄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ASAYAN’의 ‘샤란Q 록보컬 오디션’에서 떨어진 5명으로 시작한 그룹이다. 오디션 자체가 주는 재미 덕에 화제성이 높아졌고, 불황기 아이들 마케팅 필수요소인 ‘언더도그’ 이미지도 강해졌다. 원더걸스는 이 라인을 그대로 따랐다.
4명의 멤버는 지난 2001년이 박진영이 오디션 프로그램 SBS TV ‘영재육성 프로젝트 99%’를 통해 발굴한 이들이었고, 마지막 한 명 ‘예은’은 데뷔 직전 오디션 리얼리티 쇼 ‘MTV 원더걸스’를 통해 선발했다. 역시 관심도는 높았고, MTV 최고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소녀시대 역시 M넷 ‘소녀, 학교에 가다’를 통해 데뷔전 인지도 확보를 꾀했지만, 이미 뽑아 올린 멤버들의 일상생활 묘사는 기획사 신데렐라 이미지만 더 강화했다는 평가다.
멤버 인원수의 문제도 있다. 으레 모닝구 무스메 하면 ‘대형 소녀 아이들 그룹’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앞서 언급했듯, 모닝구 무스메는 애초 5명의 멤버로 시작한 그룹이다. 5명의 멤버로 ‘ASAYAN’의 ‘5일간 5만장 완매’ 이벤트를 성공시키고, 첫 싱글 ‘모닝 커피’를 오리콘 위클리 6위에 랭크시켰다.
이 과정에서 쌓여진 인지도를 바탕으로 3명의 멤버를 늘렸고, 새 멤버들의 인지도가 쌓이고 난 뒤에야 다음 멤버를 영입했다. 이런 식으로 최대 15인까지 늘려나가 ‘대형 소녀 아이들 그룹’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한꺼번에 다수의 멤버들을 내놓으면 인지도 확보 과정에서 혼선이 생긴다. 몇 명은 뜰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거의 주목받지 못한다. 소녀시대는 기이하게도 ‘결과적으로 대형 그룹이 되는’ 안전한 모닝구 무스메 콘셉트 대신 그 ‘결과’만을 취한 경우가 됐다.
반면 원더걸스의 행보는 정석적이다. 일단 모닝구 무스메와 동일하게 5명으로 시작했다. 멤버 개개인 인지도 확보에 있어 사실상 한계치다. 또한, 지난 8월 멤버 ‘현아’가 탈퇴하자 곧바로 ‘유빈’을 채워 넣어 ‘명수’를 맞춰낸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4명이어도 큰 상관이 없는데 말이다. 서서히 현아의 복귀도 점쳐지고 있는 와중이어서, 향후 ‘조금씩 늘려나가는’ 모닝구 무스메 전략이 활용될 소지가 있다. 만약 멤버 확대가 가시화된다면, 원더걸스는 모닝구 무스메 전략의 진정한 적자가 된다.
노래와 의상 콘셉트 등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원더걸스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녀시대는 청순하지만 우리는 촌스럽다”고 자평한 바 있다. 맞는 말이다. 원더걸스는 소녀시대에 비해 노래도 복고풍이고, 의상도 어딘지 촌스럽다. 그러나 ‘청순소녀’의 산실처럼 보이는 모닝구 무스메도 애초에는 ‘촌스럽기 때문에 뜬’ 그룹이었다. 모닝구 무스메 초기 멤버들 중, 현재와 같은 청순 미소녀는 없었다. 심지어 OL, 즉 사무직 여직원 출신 24세 멤버도 있었다. 이들을 결정적으로 스타덤에 올린 싱글 ‘러브머신’은 원더걸스 히트곡 ‘텔미’처럼 복고풍 넘버였다. 디스코 베이스에 ‘뽕끼’를 섞고, 중독적인 튠을 구사했다는 점도 같다.
한 마디로, 당시까지 소녀 아이들 그룹이 좀처럼 시도하지 않은 이미지 파괴를 통해 떴다는 것이다. 이후 가볍고 부드러운 댄스 넘버로 전향한 것은 이 ‘촌스러운 콘셉트’가 다 팔려나가고 그룹 위상 상승으로 더 이상 언더도그 이미지로 밀기 힘들어졌기에 도입한 전략이었다. 마찬가지로 소녀시대는 모닝구 무스메의 후기 패턴만 밟고, ‘뜨는 모델’은 원더걸스가 짚은 셈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보이는 것과 같다. ‘텔미’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반면, ‘다시 만난 세계’는 ‘기획사에 밀어준 만큼’만 떴다. 멤버 인지도 확보도 역시 원더걸스 쪽이 수월했고, 초기 론칭 역시 TV 드라마, CF 노출까지 동원해 얻어낸 소녀시대와 MTV 방영 이후 별다른 마케팅을 하지 않은 원더걸스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차후 어떤 식으로 구도가 뒤집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시작 지점에서의 승세는 원더걸스가 잡았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같은 모닝구 무스메 콘셉트를 놓고 경쟁이 벌어지는 현 시점, ‘진짜’ 모닝구 무스메 멤버 3인이 라이선스 음반 국내 발매 홍보차 내한했다. 물론 아직 일본 노래가 공중파 방송도 제대로 못 타는 현실인지라 ‘메인스트림적 입장’에서는 딱히 위협요소라 보기 힘들다. 그러나 짚어야 할 부분은, 현재의 모닝구 무스메를 상대해야 할 국내그룹은 원더걸스가 아니라 소녀시대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원더걸스는 메인스트림이건 언더그라운드건 같은 콘셉트의 경쟁자가 없다.
벤치마킹 전략은 섬세해야 한다. 콘셉트만 봐서도 안 되고, 콘셉트가 성공한 근원과 이유, 과정까지 모두 살펴봐야 한다. 사회 환경의 차이까지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 벤치마킹 대상이 국내에 바로 진출했을 때 입게 될 타격도 예상해 봐야한다. ‘적용’의 문제다.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원류는 같지만 정반대로 가버린’ 기획은, 뛰어난 적용과 그렇지 못한 카피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로서 두고두고 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다.
<사진> 왼쪽부터 ‘원더걸스’의 소희, 유빈, 선미, 선예, 예은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memo>
요즘 뜬다 못해 난다 하는 소녀그룹 원더걸즈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나의 웹서핑은 위 기사에서 마침내 종결이 되었다. 난 궁금했다..."왜 원더걸즈가 뜨는 것일까?", "왜 지금 이 때에 소녀아이돌 그룹이 뜨는 것일까?"(무릇 신문방송학도라면 이런 것에 민감해야 하는 법) 사실 개인적으로는 취향이 4차원인지라 소녀시대의 부담스런 군무나 원더걸즈의 간지러운 안무나 억지웃음이 나오는 것은 마찬가지라지만 그래도 많은 대중이 열광하고 끊임없이 UCC로 재탄생시키고 있는 원더걸즈와 그들의 춤이 어떤 대중적 요소를 간파해 낸 것인지 궁금했던 차였다.
우선 후자에 대한 답은 한 마디로 하면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소녀시대'와 '원더걸즈'가 만든 양대 소녀그룹의 대결구도는 90년대 'SES'와 '핑클'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SES와 핑클이후로 약 5년여 동안 딱히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을 소녀그룹이 나오지 않고 있던 차에 때맞춰 등장한 그들이기에 뜰 수 있었다는 연예기자들의 분석이었다.
그럼 왜 소녀시대보다는 원더걸즈 인 걸까? 그 이유는 위의 기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대중의 막연한 기다림에 기대어 등장한 소녀그룹이 아닌, 철저히 대중의 입맛에 맞는 음악과 색깔을 가지고 나온 그룹이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30~40대의 추억을 자극하는 복고음악과 과장된 의상컨셉트, 10~20대의 재미와 감성을 자극하는 쉬운 안무와 귀여움. 그게 바로 원걸의 흥행요소였던 것이다.
지난 1학년 때 대중문화론을 배우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문화의 힘은 역시 대단하다. 대중문화는 그 중에서도 상품성이 지극히 강하기에 한편으로는 조금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고, 사회 전반적인 문화의 성숙을 위해서는 특정 기업, 기획사가 만든 '문화상품'이 장악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대안문화들이 대중의 힘으로 창출되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맺게 되는 것이 모범적인 결론이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대중문화의 상업성을 부정적인 것이라 속단할 수만은 없다는 이야길 하고 싶다. 대중문화의 상업성은 바꿔말하면 지극히'소비자 중심'적 관점으로 만들어 지는 문화이다. 선택은 소비자의 자유라지만 대중문화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한다. 물론 그러는 가운데 엄청난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선정성, 폭력성, 획일성 등) 어찌 되었든 대중문화를 주도하려는 세력은 끊임없이 대중에 포커스를 맞추고(그러하기에 대중문화라고 불릴 수 밖에 없을지도) 그들을 읽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오히려 대중문화는 대중을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물론 새롭다고 해서 모두 긍정적이라고 평할 수 는 없지만 말이다.
이 시대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포착하되,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할 수 도 있어야 하겠다. 기업도 개인도 우리사회가 원하는 그 방향을 포착해 내고, 그 다음을 보여 줄 수 있을 때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